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문단 편집) === 여명편 === [[아스타테 회전]] 직후에 열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의 원수 서임식에서도 등장하지만, 단순한 인물 소개에 그쳤으며 별다른 행적은 없었다. [[카스트로프 동란]]에서는 부정한 방법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오이겐 폰 카스트로프]] 공작이 죽자 리히텐라데는 유산을 조사해서 부정축재한 부분을 뗀 다음에 상속을 인정해주겠다며 [[막시밀리안 폰 카스트로프]]의 작위와 재산 상속 수속을 연기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영지에 파견된 재무성 조사관을 두 차례나 쫓아냈고, 리히텐라데는 재무상서 [[겔라흐]]의 요청을 받아들여 막시밀리안에게 수도 [[오딘(은하영웅전설)|오딘]]에 출두를 명하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공포에 빠진 막시밀리안은 친족의 중재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이 터지자 리히텐라데는 라인하르트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소장에게 반란을 일으킨 [[막시밀리안 폰 카스트로프]]를 토벌할 것을 명하는 칙명을 받아냈다. 본래 그는 라인하르트의 요청에 부정적이었지만 [[바이츠]]가 나서 설득하자 마음을 바꾸어 키르히아이스가 칙명을 받을 수 있도록 수속을 밟아주었다. 하지만 리히텐라데는 바이츠가 라인하르트로부터 뇌물을 받고 리히텐라데를 설득한 건 꿈에서도 몰랐다. 키르히아이스가 열흘만에 반란을 토벌하자 리히텐라데는 제국재상 대리 자격으로 키르히아이스에게 '쌍두독수리 무훈장'을 걸어주고 무훈을 칭송하며 황제 폐하에게 충성을 바치라고 훈시했다.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제국군이 동맹군에게 대패하여 [[이제르론 요새]]를 헌납하자, 리히텐라데 후작은 프리드리히 4세의 요청에 의해 직접 달려와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외적에 대해 항상 신성불가침해야 하는 제국 영토가 동맹군 손에 넘어간 것에 대해 사죄했는데, 라인하르트는 이를 두고 '반란군'이 언제부터 대등한 외부 세력이 되었냐고 비꼬았다. 제국군은 주둔함대 기함에 있던 사람 중 유일한 인물인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령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일개 대령 하나가 처벌받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짓기에는 이제르론 함락이라는 충격이 너무 거대했다. 결국 [[제국군 3대 장관]]들이 리히텐라데에게 와서 사표를 제출했다. 리히텐라데는 3대 장관이 모두 물러난다면 그 중 하나는 라인하르트의 차지가 된다고 만류했지만, 통수본부총장 [[슈타인호프(은하영웅전설)|슈타인호프]] 원수는 지위에 연연해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그르쳤다는 소리는 듣기 싫다며 사표를 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리히텐라데의 예상대로 [[프리드리히 4세]]는 리히텐라데로부터 사표를 받은 뒤 라인하르트를 불러 어느 직책이 탐나느냐고 물었다.[* 이때 황제의 말투는 마치 손자에게 원하는 선물을 고르라는 투였다고 한다.] 그 모습에 리히텐라데는 정신이 나가버렸지만 라인하르트는 예상을 깨고 3대 장관에게는 죄가 없다며 3대 장관을 면책해달라고 요구했다. 프리드리히 4세가 리히텐라데에게 의견을 묻자 리히텐라데도 라인하르트의 의견에 동감하며 3대 장관에게 1년간 녹봉을 박탈하여 전몰 장병의 유족 구제기금으로 쓰자고 제안했고, 프리드리히 4세는 세부사항은 리히텐라데에게 맡긴다는 말을 끝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그렇게 사건이 끝났지만 리히텐라데는 퇴실한 뒤 다시 달려와 프리드리히 4세에게 라인하르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는 이미 라인하르트가 언젠가 찬탈할지도 모른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고 도리어 골덴바움 왕조가 인류 창성 때부터 있는 것도 아닐진대 자신의 대에서 망하지 않을 도리라도 있냐고 반문해서 리히텐라데를 놀라게 했다. 그러다가 [[아드리안 루빈스키]]로부터 동맹의 [[제국령 침공작전]]을 들은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이 제국령 침공계획을 보고했다. 리히텐라데는 이번 기회에 반란군을 격파하여 황실의 위신을 세우고, 통제를 조금 풀어[* 사상범에 대한 특별사면, 세금 감면, 주가(酒價) 인하 등등.] 평민들 사이에서 부는 혁명 분위기를 잠재우려고 했다. 심복이자 재무상서 [[겔라흐]] 자작은 너무 풀어주면 평민들은 기어오른다고 불만을 표했지만 리히텐라데는 너무 조이기만 하면 통치를 할 수 없다고 다독였다. 이후 루빈스키 이야기를 거쳐 두 사람은 방어 임무를 맡을 지휘관 인선에 들어갔는데 [[겔라흐]]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을 추천했다. 하지만 리히텐라데는 만약 라인하르트가 성공하면 명성이 높아져 우리가 대항할 여지가 줄어들고, 패하면 제국령 한복판에서 기세등등한 3천만 대군과 맞서싸워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겔라흐는 만약 라인하르트가 패한다 해도 반란군에게 적잖은 손해를 입힐 테고 적은 긴 보급선과 지리 조건 때문에 불리하니 여유럽게 격파하면 되고, 이긴다 해도 벼락출세한 애송이는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답했다. 결국 리히텐라데는 라인하르트에 요격을 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